“폐허 속에서 나는 매일 꿈을 꾸었다.
나를 살리는 것은 꿈속이 유일했다.
살기 위해 꿈에서 깨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다.
매일 꾸는 꿈속에는 먼저 떠난 사람들, 마음이 가닿지 못한 사람들, 상상 속의 것들, 아름다운 것들, 다정한 것들, 반짝이는것들, 따뜻한 것들,
폐허가 된 나를 살리는 것들뿐이어서 언젠부터인가 현실과 꿈이 구분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섬.망(望)>을 마주하는 동안은 오랜 시간 꾸어오던 꿈들을지나게 된다.
은애를 통해 폐허 속 고독의 시간들을 쌓아 희망을 꿈꾼다.
끝은 없다.
마침내 고요하다.”

 

– 박소현 감독 < 에프터 미투 >  < 구르는 돌처럼 >

“나의 몸이 젖은 모래로 가득 차
발걸음마다 축축한 흔적을 남기던 시절이 있었다.
음식을 먹지만 모래를 씹었고 말을 하지만 모래를 뱉었던 시간.
언젠가 파도가 밀려오면 금세 허물어질 것 같았던 숨.
영화는 나를 그 시절로 이끌더니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그 손을 덥석 잡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엿보고
지긋한 시간을 함께해 주었다.”

 

– 김수정 감독 < 평평남녀 >  < 파란 입이 달린 얼굴 >

“섬·망(望), 작지만 큰 울림이 있는 영화다.
길고 느린 호흡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 김대현 감독 < 다방의 푸른 꿈 > < 코리안 블랙 아이즈 >

“10대 시절 장자의 나비 꿈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나비가 꿈 속에서 장자가 된 것인가, 장자가 꿈 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장자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했을 텐데,

어린 나는 그저 나는 내가 아닐 수도 있다라는 약간의 도피성 망상으로 빠져들곤 했다.
나쁜 일이 일어나면 나는 누군가의 꿈속의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참동안 했다.

마치 나의 현실은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괜히 편해졌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기보다는 도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정신을 번쩍 차리고, 내 몸이 실제함을 느끼고 내 잘못을 깨닫고, 그 오류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며, 속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 자체가 늘 순탄치 않고, 여전히 나는 변명과 회피를 일삼는 인간이다.
영화  <섬.망(望)>은 삶을 열망했지만 안타깝게도 삶을 외롭게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마지막 꿈이라고 읽힌다.
영화 속 은애의 죽음은 특정한 형태의 죽음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죽음은 누구나에게나 찾아오는 절대적인 순간이다.
주인공의 마지막 서러운 울음은 현실에 대한 처절한 인식이다. 도피와 회피로는 삶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진실에 대한 은유이다.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되는 영화 <섬.망(望)>.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감독의 열망이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 강유가람 감독 < 럭키, 아파트 > <우리는 매일매일>

“영화 ‘섬.망(望)’은 어떤 기억처럼 출렁인다.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사후세계가 어떻게 나의 기억이 될 수 있었을까?
모든 존재와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 영화의 시간은 느리디 느리다.
그 느린 스침과 호흡 중에 우리 모두가 비로소 존재한다. “

 

– 이소현 감독 < 장기자랑 > < 할머니의 먼 집 >

“만든 분들의 삶과 나란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맑고 진중한 이 영화를 많이 응원하고 추천합니다.”

– 장세경 감독 < 픽션들 >

“영화 섬.망(望)은 천주교 신부 입장에서 보면 예수 부활을 설명하는 영화 입니다.

자신의 상처가 너무 아파서 섬으로 자신을 숨기고 상처 보다 더 깊은 고독에 직면 하다가

결국에는 자신과 화해하고 마음 속에 굴레인 섬을 벗어 나는 메세지를 명상하듯 이야기하는 영화 이기 때문이다 “

 

 

– 홍창진 신부 ( 천주교 안양 석수동성당 주임신부 )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는 요즘 같은 시대에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참으로 낯설고 힘든 일처럼 느껴집니다.
섬.망(望) 속 주인공 은애는 마음이 황폐한 사막과도 같은 여자입니다.
이 영화는 그런 은애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봅니다.
한 편의 시처럼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은애의 마음의 궤적과 파장을 스크린에 정성스럽게 담아냅니다.

은애가 겪었을 사연과 거기에 서려있을 수많은 시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누군가의 절망 속에서 희망을 떠올렸던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영상으로 펼쳐지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이 세상에 살아있음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시에 은애에게 미안함을 느낍니다.
섬.망(望)은 멈춰있는 것은 곧 죽음과 다를 것 없는 우리 삶 속에서,
놓쳐서는 안될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아주 귀한 영화입니다 “

 

– 김현회 배우, 연극연출가 ( <남자들> <응, 잘가> )

“희망 하나에 수많은 절망이 받치고 있는 것처럼
떠오른 절망 아래에는 얼마나 많은 희망이 있을까
그래서 은애의 고요한 헤매임에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았나보다.
특히, 카스테라를 먹여주던 미애와 수줍게 받아먹는 은애의 바닷가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종종 생각났다”

 

– 류혜린 배우  ( 드라마 <커넥션> , 연극 <응, 잘가> )

“이 영화의 시간과 리듬 그리고 은애라는 인물은 현시대가 추구하는 속도와 방향에서 빗나가있는 듯 보인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이 영화는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영화이다.
오랫동안 이런 영화와 만나길 기다려왔다.”

 

– 김세영 배우 〈메리제인〉

<섬.망(望)>을 보기 위해서는 약간이나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2시간 30분의 짧지 않은 상영 시간 동안 영화는 친절한 이야기를 전하지도, 다양한 컷으로 눈호강을 시켜주지도 않는다.

대신 어두운 색조의 롱테이크 화면과 누군가의 꿈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몽환적인 이야기가 보여진다.

주인공 여성의 고독한 삶과 그 마지막 대목을 뛰어난 영화적 수단으로 담아내는 이 영화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된 사운드와 미니멀한 음악은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중요한 요소다.

영화에 몰입하는 순간, 이 여성의 기억과 꿈, 그리고 판타지 속에서 스며 나오는 깊은 슬픔과 고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그저 그런 여배우와 단신 대머리남의 연애>로, 2018년 <기억할 만한 지나침>으로 전주를 찾았던 박순리(박영임) 감독의 신작이다.

 

– 문석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박순리와 김정민우의 영화는 매 작품마다 조금씩 경향성은 달라져도, ‘존재’라는 같은 요소를 지닌다.

TV에 나올 일이 딱히 없고, 신문에서는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모 씨’나 ‘아무개’로 이름이 오른다고 해도

그런 존재에게 삶의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설사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존재이라 하더라도, 그렇다는 이유로 그 존재가 무시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그들이 말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구석에 내팽개치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

그 존재가 사실은 말을 하고 있었는데도, 그 말을 제대로 귀담아 듣지 않은 다수의 책임인데도.

 

<섬.망(望)>은 ‘섬망'(譫妄, Delirium)이라는 의학 용어가 지닌 ‘생사의 기로에 설 정도로 몸의 상태가 악화되어 일어나는 환각’이라는 뜻대로, 얼핏 보기에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와 흐름의 연속이다.

지금 화면 위에 나오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관계이며, 지금 극중의 인물이 서있는 장소와 시간은 어디인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섬망’에도 ‘몸 상태의 악화’라는 원인이 있듯, <섬.망>에 등장하는 모습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이 모습들이

어떠한 연유로 형성되었는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분명치 않은 부분은 산적하다.

마치 우리가 신문 단신 기사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방송의 짤막한 단신 보도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만 알지 ‘왜 일어났는지’는 쉽게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영화는 간략한 소식들을 그저 쉽게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간절함을 담아 그 뒤에 있었을 모습들을 이미지로 상상하고자 한다.

그렇게 영화는 사회에서 아주 약간의 기록, 아주 약간의 잔해로만 남은 이들을 사회의 ‘섬망’같은 존재로 치부하는 대신

그들이 살아갔을 순간의 모습과 심리에 조금이라도 다가서기를 ‘바라면서'(望, 망)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생각하면서.”

 

– 성상민 문화평론가

“OTT가 발달하면서, 볼거리도 많아지고, 지역적 문화적 격차도 사라진 것 같지만,

쏟아지듯이 밀려오는 대량 소비적 시청각 급류에 선택의 폭은 더 좁아지고 덩달아 생각의 깊이는 더 메말라가는 것만 같다.

오히려 도시에 살았을 때, 주기적으로 방문한 극장에서 다채로운 영화 포스터만 보아도

그저 힐링이 되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전문가들에 의해 예술적 가치를 중심으로 두고 걸러진 제대로 된 ‘예술작품’ 한 편을 만나면,

정말 몇 날 며칠을 그 감동으로, 치이고 치인 마음을 달래고 일상을 살아갈 힘을 받곤 했었다.

지금은 도파민 충족을 위해 손가락 몇 번에 의해 시간 때우기식의 ‘상품(商品) 고르기’가 일반적으로 되어버렸으니,

가속화되는 발전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그런 가운데, 모든 것을 역행하는 듯한 ‘작품(作品)’을 만났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평범한 한 사람.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실로 은혜로와서(恩),

마주한 모든 생명과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기 충분한(愛) 나와 너(은애).

때로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석양이 질 무렵의 바다와 카스테라를 좋아하는 나와 너는 이미 이 세상에 함께 살고 있지만,

마치 ‘섬’처럼 분리되어만 가고 있다.

외롭고 고독하고. 그 어둠 같은 우울감은 어느새 나와 너를 삼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속절없이 지나온 그 짧고도 찬란한 시간을 지나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 앞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당신이 먹여주는 카스테라가 그리웠고, 곁에 늘 있던 따뜻한 온기의 반려동물도 참 그리웠고,

무엇보다 당신과 함께 나누던 소소한 대화가 참으로 그리웠다.

그 그리움은 어느새 바라고 바라는 희망의 ‘촛불’과 ‘별’로 세상을 따뜻하게 밝혀준다.


과연 나와 너는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가만히 앉아 스스로를 혹은 나와 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영화 <섬.망(望)>은 우리에게 154분의 영원과 같은 사색의 시간을 선물처럼 전해준다.

부디 점점 섬처럼 타자화되어가는 이 세상의 은애들에게 ‘순리네’가 전하고 싶은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두 손 모아 진심으로 기도한다.”

 

‘섬.망(望)’단상(斷想)

– 이현아 목사 ( 숨 부여교회 )

지방살이를 하다 보면, 보고 싶은 영화를 쉽게 볼 수 없다.

수도권과 대도시의 독립영화관에서만 상영한다는 소식에 짧게 탄식하고 OTT에 등장하기를 기다린다.

방구석 화면으로 생활 소음과 함께 만나는 것은 이미 감독이 의도한 영화가 아니어서 영화를 영화답게 볼 수가 없다.

가끔은 영화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해서 보고 싶다는 열망조차 가질 수 없다.
영화 <섬.망(望)>(prayer of the isle, 2022)은 그렇게 힘들게 만난 영화다.
2022년 제 23회 전주국제영화제 초대작인 박순리 감독의 영화 <섬.망(望)>은 영화제에서 소개된 주요 작품을 모아 가을에 상영하는 ‘폴링 인 전주’ 이후, 어느 곳에서도 볼 기회가 없었다.

“그저 그런 여배우와 단신 대머리남의 연애”(2014) 이후 네 번째 작품을 선보인 박순리 감독은 충남 홍성에서 살다가

이웃에서 키우던 염소를 살리기 위해 마당 있는 곳을 찾아서 현재 거주하고 있는 부여로 삶터를 옮겨왔다.
이미 개와 고양이를 키우고 있던 박순리 감독과 김정민우 촬영감독의 순리필름 영화들이 독창적인 세계를 품을 수밖에 없는 우직함을 엿볼 수 있는 사연이다.
꾸준히 독립영화를 제작, 응원하고 있는 인디라인의 김대현 감독은

영화 <섬.망(望)>이 제대로 관객을 만나는 기회도 없이 지나가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직접 상영의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6일, 군산시 옥산힐빙센터(군산시 옥산면 옥산로 245)에서였다.
옥산힐빙센터에서는 작년 4월부터 12월까지 ‘옥산동네시네마’가 진행되었다.

군산문화도시센터와 함께 해당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대현 감독은

대중적 장르영화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영화사에서 중요한 획을 그었던 동서고금의 영화를 선보였다.

매달 마지막 주에는 감독이나 영화평론가를 초대하는 GV도 진행했다.
김대현 감독은 군산 시내에 위치한 인문학창고 정담(군산시 해망로 244-7)에서

매주 영화 전문가와 감독의 강연으로 구성한 ‘정담시네마’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영화에 대한 군산 시민의 눈높이를 올리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영화 <섬.망(望)>을 기다렸던 관객들과 영화 <섬.망(望)>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던 관객들은

영하의 날씨에도 옥산힐빙센터로 삼삼오오 모여들어 155분에 달하는 극영화에 빠져들었다.

간단한 시놉시스와 영화 소개가 제공되지만, 내용을 모르고 보는 것을 추천한다.

박순리 감독이 표현했듯이 마치 한 편의 시(詩)와 같아서

관객은 영화가 펼쳐 놓은 세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빛의 방향과 질감과 양, 시간의 방향과 흐름, 그리고 속도를 잡아낼 수 있는 영상만의 특징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특히 독특한 사운드의 역할이 중요하여 집중할 수 있는 극장 공간에서의 관람이 필수적이다.
가수 나미의 데뷔 시절 무대 영상이 큰 극장 스크린에 소리 없이 펼쳐지는 초반 신의 경우,

극장 아닌 곳에서 본다면 그 맥락과 의미가 전혀 달라질 것이다.

관객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는 있겠으나 극장 신을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은

다른 장면들과 함께 일종의 특별하고 유일한 체험이 될 것이다.

제목처럼 영화 <섬.망(望)>은 섬처럼 고립된 인물의 삶이 먼지처럼 회상처럼 부유하고,

섬망에 빠진 인물이 꾸는 꿈은 누구의 꿈도 될 수 있게 되며

누군가의 꿈 속에서 꿈의 꿈을 꾸는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극장에 앉은 우리는 화면의 세계와 극장의 세계, 그리고 현실의 세계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짐을 느낀다.
꿈은 나도 모르게 나의 현실이 되고, 인물의 분열과 중첩으로 곧 인물과 나의 위치가 뒤바뀌기도 한다.

나만의 고유한 속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지독한 고집과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견디지 못해 빠르게 지나치거나 그대로 굳어 버린다.
감독은 그 모든 시간의 고유함을 충실히 살아내야 한다고 끈질기게 말을, 아니 컷을 이어간다.

마침내 끝날 듯 끝나지 않던 끝에 이르면, 간절하고 희미한 아름다움이 그리워서 관객이자 인물인 내가 끝내기를 거부하려 한다.

그리하여 극장 문을 나서며 쏟아지는 빛은 온전한 내 삶의 몫이 된다.
그렇다. 감독은 어떤 종류의 죽음을 소재로 이 영화를 만들었지만, 죽음을 통해 우리를 삶으로 이끌고 있다.

비록 화려하고 찬란하지는 않더라도, 아무도 밟지 않은 나만의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은 하루, 하루, 내가 살아내는 시간뿐이다.

그것을 생명이라 부른다.

지금도 영화의 몇 장면들이 강렬하게 눈에 어른거린다.

부디 <섬.망(望)> 후에 생명이 되고 시인이 되는 경험을 아무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영화 <섬.망(望)>의 영문 제목은 ‘섬의 기도 Prayer of the isle’가 된다.

세상을 향한 독립영화 감독들의 시(詩)가 극장을 통해 관객에게 닿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독립 영화,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 시가 되다.


– 김규영 / 오마이뉴스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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